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努治傳-노치전
모우미성(毛羽未成;깃털이 자라나지 않아 날지 못하는 새)
지미 카터(至美 咔攄) 2년, 서역 북방(西域 北方)의 수왜단(手娃段)은 비록 조공(朝貢)을 상납(上納)하지 않는 자주국(自主國)이였으나, 소국(寒國)인 탓에 예로부터 인재(人材)가 많지 않았다. 이 때 태어났으니, 부모(父母)의 뜻은 힘써 다스리라는 뜻의 이름인 노치(努治)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자는 칠세(七歲)에 아버지의 가업(父之家業)으로써 푸로구래밍(䬌露具莱抿)에 뜻을 두었다. 본디 푸로구래밍이(䬌露具莱抿)라 함은 이슬을 품은 명아주를 만진다는 뜻의 고사성어(故事成語)로 서언고사(書言故事)에 따르면 잡아(抸庌)로써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한다. 허나, 잡아(抸庌)을 능히 익히기 이전에, 개임(豈㶣:밝은 즐거움)을 만들었으니, 이때 그의 나이는 팔세(八歲)였다. 친부(親父)또한 그의 개임(豈㶣:밝은 즐거움)을 즐겼거늘, 이에 이에 대한 일화(逸話)를 소개한다. 노치(努治)가 반일(半日)동안 작(作)한 개임(豈㶣:밝은 즐거움)을 도중(途中)에 세이부(㔺移復)를 하지 않은 연유(緣由)에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었거늘 친부(親父)가 이를 알고 부위우위(不慰尤諉;위로하지 않고 도리어 꾸짖음)하기를, 한담개임(閑談豈㶣;한가함을 달래는 화평)이 사라졌으니, 안타깝도다라 탄식(嘆息)하였다.
노치(努治)가 섭렵(涉獵)한 프로구래밍(䬌露具莱抿)이 매우 수(邃)해, 족히 광(廣)했으므로, 구잉사(具膡社)에 취직(就職)함이 처음이니, 이때 그는 二十六歲(26세)였다. 구잉(具膡)이 비록 개임(豈㶣:밝은 즐거움)에 뜻을 둔 사람들이 있는 곳이였으나, 신념(信念)이 부족하여 결국은 카카오 개임(佧㻔娛 豈㶣)에 인수(引受)당하고 마니, 그가 4년만에 이를 떠난 것이 바른 판단(判斷)이 아니였겠는가? 혹사(或士)의 판단(判斷)이나, 그가 모장(帽章)을 떠난 것도 이 때문이리라. 후에 본래(本來) 사진공유(寫眞共有)인 잘범(囐釩)에 전직(轉職)하니, 본성(本性) 파불일치(頗不一致;짐짓 같지 않다)하며 이의(伊意;그의 의도)에 불만(不滿)하는 마음이 있을법도 하나, 이때 그가 잉여(剩餘)의 심연(深淵)에서 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의 이치(理致)에 닿았다.


등교기봉(騰蛟起鳳;봉황이 날아오르며 되룡이 뛰어오름)
본디, 글래식(㔕徠䤭)이 모든 개임(豈㶣:밝은 즐거움)의 처음이나, 기개임(其豈㶣;마인구라푸투를 일컷음)의 시작(始作)은 동굴개임(洞窟豈㶣)이고, 기조화(嗜調和)는 이미 깊었으니, 처음으로 정립(定立)된 법도(法度)를 먼저 풀이함이 옳을지라.
마인구라푸투의(䣕鈏捄鎯䬌鬪)는 잡아(抸庌;집을 지음)의 건축(建築)이요, 알피지(遏诐知;치우침을 막는 앎)의 모험(冒險)이요, 산두박수(產讀亳手;땅에 구절을 짓는 손)의 조합(組合)이요, 말터폴래이(眜摅乶䂾彝:이별을 무릅쓰고 땅을 갊이 떳떳하다)의 협동(協同)이니 이를 땅에서 주석을 퍼 담으니 곡괭이가 흔들린다는 시구인 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라 하는 것이다.
이에 그 이치(理致)의 상세(詳細)함을 설명(說明)한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옴이 그 첫번째이니, 광원(光源)의 주변에서도 빛은 항상 하늘이 근원(根源)인 것이므로, 무영(無影)은 오직 물체(物體)의 밑에서만 있음이라. 이에 빛이 있어도, 하늘 높이에서는 손 끝을 볼 수 없고(不可視手指:불가시수말) 땅 아래에서는 한치 앞을 볼 수 없으니(寸前偏盲人:촌절평맹인), 손은 하늘에서의 빛에 밝혀지는 것이 아니고, 어둠은 빛의 부재(不在)가 아님을 짐작(斟酌)한다. 본디, 어둠에서 물건을 찾고자 하면(暗中摸索:음중모색) 창문이 없는 방에서도(無窓門室:무창문실) 분간(分揀)하여 움직이니, 명암(明暗)은 수치(數値)이다. 정오(正午)의 밝기를 十五度(15도)라하면 七度(7도) 이하(以下)에 문수토(紊壽摅:목숨이 어지럽게 됨)하며, 十日度(11도) 이상(以上)에 사회부연(死灰復燃:죽은 것이 다시 불이 붙음)하나, 단지(但只) 일광(日光)만에 해당(該當)함으로, 비일광원(非日光源:해가 아닌 광원)이나 부직일광(不直日光)에 점화(點火)는 불가(不可)함이라. 또한(亦) 설빙(雪氷)이 七度(11도) 를 기점(基點)으로 융화(隆化)되며, 식물(植物)은 七度(7도) 이하(以下)에 아이탐화(硪圯探和:돌과 바위가 찾을 수 있게 바뀐다)되니, 칠도이상,십일도이하(七度以上十日度以下)에서 만물(萬物)이 살 수 있다. 이에, 신묘(神妙)한 법도가 있으니, 三度(3도) 이하(以下)에 땅(흙)에 녹초(綠草)가 번지지 않음에, 七度(7도)와 三度(3도)의 거리(距離)와, 十五(15)와 七度(7도)의 거리는 두배 차이남이라, 광지이치(光之理致:빛의 이치) 치충세상(致充世上:세상을 빽빽히 메우다)함은, 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의 뜻은 노치(努治)의 잉여력(剩餘力)에 있음이 아닌, 그 치충세상(致充世上:세상을 빽빽히 메우다)하는 뜻이 잉여력(剩餘力)에 있음을 짐작한다.
문수토(紊壽摅:목숨이 어지럽게 됨)의 종속(種屬)과 불록(茀麓:녹색으로 산이 우거짐)의 생성(生成)에 대해 설명한다.
생명(生命)은 만물(萬物)의 정적(靜寂) 속에서 바뀌는 모든 것이고, 이중 불록(茀麓:녹색으로 산이 우거짐)을 더함을 식물(植物)이라 하고, 불록(茀麓:녹색으로 산이 우거짐)을 뺌을 동물(動物), 문수토(紊壽摅:목숨이 어지럽게 됨)라 한다. 이에 수티부(手攄富)는 둘다 능(能)하니, 결코 생명(生命)이 아님이라. 수티부(手攄富)의 유재(遺在:세상에 존재함)에 존(存)하지 않고, 수티부(手攄富)의 유재(留在:그 장소에 남아있음)에 재(在)하지 않으나, 부재(廍載:땅이 하늘을 받치고 있음, 즉 땅과 하늘)는 부재(不在)에 활(活:살 활)치 않는다. 만일(萬一), 마을의 주민(住民)이 수티부(手攄富)가 없음에 동(動)치 않으나, 만물의 형태는 바뀌지 않고(萬物之形態不同形置換:만물지형태 불형치환), 만물의 이치는 시두(始剅:비로소 금이 감)에 기록되어 있으니(世上之理致錄於始剅:만물지이치 녹어시두), 이것이 생성(生成)의 비결(祕訣)이다. 짧은 말이 모든 것을 표현함은(微句標萬物:미구표만물), 잡아(抸庌;집을 지음)에 선행(先行)하는 간결(簡潔)한 칙(則)이다. 이가 표현(表現)하는 바는, 본인(本人:노치를 일컷음)도 알지 못함이라. 바이엄(攸異渰:장소마다 구름이 다름)에 관해 문(問)하자 노치(努治)가 말하기를, 나 또한 이 바이엄(攸異渰:장소마다 구름이 다름)이 무엇인지 모른다라 답(答)하였으니, 이를 노치(努治)의 무심(無心)함으로 앎은 협심(狹心)의 표(票)며, 오히려 시두(始剅:비로소 금이 감)의 의도(意圖)는 머리로 알 수 없음이요, 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땅에서 주석을 캘때, 곡괭이가 흔들리는 모양새)를 서과피지(西瓜皮舐:수박 겉 핥기)로 관찰(觀察)함도 과분(過分)함이라. 이에 누구도 개임(豈㶣:밝은 즐거움) 앞에서는 잉여(剩餘)가 아닐 수 없다(爰某脫剩 餘對豈㶣:원모탈잉 여대개임)

이청어람(而靑於藍-더 푸르다. 청출어람 다음에 오는 이음말)
덕중의 최고의 덕은 서양(西洋)의 덕이다(五德中 第一德 洋德之德:오덕중 제일덕 양덕지덕). 비구오덕(比丘五德: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다섯가지 덕)에 일컷기를, 오덕(五德)의 덕목(德目)에 다의다의(多疑多義:의견이 많고 의심이 많음)가 있으나, 다만 만의만의(滿意熳意:만족스러운 빛나는 의견)은 잉여(剩餘)를 가르키는 것이라 한다. 잉여(剩餘)의 심연(深淵)은 말로 형용(形容)할 수 없으며(剩餘之深 淵形容言不:잉여지심연 불형용언), 오덕(五德)의 법도(法度)는 정해지어 따를 것이 아니니(五德之淵 形決律法:오덕지법도 불결율법), 잉여(剩餘)는 잴 수 없으며(剩餘不測:잉여불측), 그 뜻은 뜻있는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意於不意:의어불의). 말로 말할 수 없음이 잉여(剩餘)의 규정(規定)이 아니겠는가(불설이설우:不說以舌于)?
이에 그 양덕(洋德)의 예본(例本)를 제시(提示)한다.
원래(元來) 양덕(洋德)을 일컷음은, 양인(洋人:서양인)의 후예(後裔)를 말하는 것으로, 만무(萬無)하여 구라파(歐羅巴)의 덕(德)을 칭(稱)하는 것이 아니다. 신덕(神德:신의 덕, 즉 종교)을 믿으며 신지(新地:새로 개척한 땅)의 신인(新人)의 신덕(新德)은 깊은 뿌리가 없으니(神德之 新地於 新人㞢 新德之 本拂根深:신덕지 신인어 신덕지 불본근심), 양덕(洋德)은 전작(前作)에 말터폴레이(眜摅乶䂾彝:이별을 무릅쓰고 땅을 갊이 떳떳하다)이라. 이런 연유(緣由)로 개개설명(箇箇說明:일일히 설명함)함은 불가능함으로, 대(代:대신할 대)해 예본(例本)를 제시(提示)한다. 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땅에서 주석을 캘때, 곡괭이가 흔들리는 모양새)의 순성(順性:본성을 쫒음)두고 순(順)을 메기기를, 잡아 학자(抸庌 學者;집을 짓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가 그 첫번째요, 카만도 학자(佧晩到 學者:늦게 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가 두번째요, 물리학자(物理學者)가 세번째요, 라두수톤 기술자(覼讀數吨 技術者:분명치 못한, 자세한 구절을 셈하는 사람)가 네번째요, 건축가(建築家)가 그 다섯번째이다. 허나 잡아(抸庌)전에 푸로구래밍(䬌露具莱抿:이슬을 품은 명아주를 만짐)이 있음이요 건축(建築) 후(後)에 모두(毛頭:털의 끝)가 있음으로, 푸로구래밍(䬌露具莱抿:이슬을 품은 명아주를 만짐)은 건축(建築)에 선행(先行)한다. 모두(毛頭:털의 끝)의 실행(失行:도리를 잊어버린 행동)은 순성(順性:본성을 쫒음)의 불행(不行)에 있으며, 순성(順性:본성을 쫒음)의 불행(不行)은, 개성(個性)의 오행(誤行:잘못된 실천)에 있다(毛頭之 失行卽 順性之 不行, 順性之 不行卽 個性之 誤行:모두지 실행즉 순성지 불행, 순성지 불행즉 개성지 오행). 순성(順性:본성을 쫒음)에 마음이 있음은 일심(益心:넘치는 마음)이며, 이를 잉여(剩餘)라 한다. 잉여 중의 최고의 잉여는 동인(東人:일본, 한국 ,중국등의 동아시아의 사람을 일컷음)의 잉여이다(剩中之 第一餘 東人之赢:잉중지 제일여 동인지영). 동인지(東人之:동아시아의) 만화(萬化:한없이 화목함)과 오덕후(五德後:오덕을 지키는 능력)는 서로 통(通)하니, 실로 그릇이 넘치는 것과, 큰 그릇에 부족한 것은 종이 한장 차이다(苟益容器 空間空器 一紙隔差: 구익용기 공간공기 일지격차).

진근위예(陳根委翳-고목의 뿌리는 가을에 시들어 마름)
발부(撥府)가 인수(引受:넘기어 받음)을 제의(提議)하자 노치(努治)가 말하길, 내가 발부(撥府)를 만들 기회다라 답(答)하였다. 이는 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의 배타(排陀:비탈길을 밀어 냄)의 일로, 땅에서 주석을 퍼 담으니, 곡괭이가 바람에 흔들리는구나라는 뜻의 시구인 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는 모장(帽章)의 것이다.모장(帽章)의 모명(帽名:모자의 이름)이 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땅에서 주석을 캘때, 곡괭이가 흔들리는 모양새)라는 시구인 것이다. 모자의 시구가 마인구라푸투(䣕鈏鎯䬌鬪)임을 두번째로 께닫은 사람은 재부(諸父)이다. 제부(諸父)의 본명은 배루간수탄(裵鏤間首坦:칼과 칼 자루 사이가 잘 맞는다)으로, 노치가 아이탐(硪圯探:바위와 흙을 찾음)에 나의 모자를 숨겨 두었다 했을때, 처음으로 찾은자가 바로 제부(諸父)인 것이다. 마인구라푸투에는 토석(土石) 외에 탐색할 것이 많다하여 아이탐(硪圯探)이라 명명(命名)해, 재부의 솜씨가 출중하며, 이를 아이탐의 이치를 깨닫았으니, 노치(努治)가 재부(諸父)에게 모장(帽章)을 맡겼다. 이에 주민을 추가한 것도 재부이고, 말을 추가한 것도 재부(諸父)이니, 그가 기개임(其豈㶣;마인구라푸투를 일컷음)에 남긴 영향이 지대(至大)하다고 사람들이 입모아 말한다. 이에 어찌,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땅에서 주석을 캘때, 곡괭이가 흔들리는 모양새)의 도(道)가 넓이가 광대하고, 그 폭이 불측(不測)에, 그 재미를 깨닫은 자는, 아이탐(硪圯探:바위와 흙을 찾음)의 무늬만 보고서도 경탄(驚歎)할 것이며, 하늘의 색깔만 보아도 바이엄(攸異渰:장소마다 구름이 다르다)의 엄밀(嚴密)함에 감탄할 것이니, 어찌 하루종일 이에 빠진자를 잉여(剩餘)라 할지언가? 허나, 진정한 수티부(手攄富:손을 놀려 부우해짐)는, 잉여(剩餘)라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마인구라푸투(䣕鈏捄鎯䬌鬪:땅에서 주석을 캘때, 곡괭이가 흔들리는 모양새)의 진짜 이치(理致)를 알기 위해서는, 잉여(剩餘)의 재능才能이 있어야 할 것이다(覺通正达 必在剩才:교통정체 필재잉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