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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내전과

사실 알렉산드르 콜챠크 제독의 경우 군인 이전에 극지 탐헙가(젋었을 때에는 아주 유명한 북극 탐험가로 한 때에는 '북극' 하면 그의 이름이 떠오를 정도임.)로 유명하였고, 볼쉐비키 혁명 후에는 결국 시베리아 옴스크 지방에 볼쉐비카에 반대하는 백군 정부(흔히 옴스크 정부 라고 함. 백군 내부 사이에서도 권력 투쟁이 상당히 심하였는데 그는 일련의 쿠데타 이후에 백군의 사실상 혹은 명목상 총사령관의 지위에 오르게 됨.)를 세워 치열하게 레닌/트로츠키의 볼쉐비키 세력과 치열하게 싸움을 벌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특히 그는 이 때 소위 '옴스크의 황금; 이라고 하여 제정 러시아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막대한 양의 황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황금은 적-백 내전의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 기자들을 초빙하여 그 존재를 보여줌으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었읍니다....... 다만, 이 황금 때문에 결국 그는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는데, 즉 당시 시베리아 지방에 주둔하고 있었던 체코 군단(원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소속의 체코군 병사들의 집단으로 1차대전 때에 러시아 군에 포로로 잡힌 후 러시아 제국에 의해 反오스트리아-헝가리를 표명하는 군사집단으로 성장(사실 이 부분은 적군 포로를 이용한 행위로 제네바협정 위반임)한 것이 그 시초. 적-백 내전 중에 그들은 발이 묶이어 시베리아에 갇힌 상태이었는데, 그들은 곧 이어 무력을 사용하여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완전 장악하고 시베리아 지방에서 反볼쉐비키 세력의 중요한 축이 됨.)이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이 가지고 있었던 막대한 양의 황금을 시시탐탐 노리고 있었읍니다. 이후 알렉산드르 콜차크 정부가 볼쉐비키 세력에 쫒기게 되었을 때, 이 체코 군단이 장악하고 있엇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하여 탈출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체코 군단에서는 오히려 이를 황금을 빼었을 좋은 기회로 보고 일련의 속임수와 배신을 거듭하여 결국은 황금을 실은 기차(8량 이던가)를 모두 빼앗고 알렌산드르 콜챠크 제독을 일단의 급진파 사회주의자 그릅에게 넘기게 되고 이들이 그를 다시 볼쉐비키 군에게 인도하게 되어 결국 그는 볼쉐비키 군에 의해 총살당합니다.... 한편 황금을 빼앗은 체코 군단은 이 황금을 가지고 볼쉐비키 정부와 협상을 벌이는데 이 협상에 따라 그들은 황금을 볼쉐비키에 넘기고 대신 블라디보스톡으로부터 안전한 출구를 보장받고 전원 미국을 거쳐 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그들의 고향)로 돌아오게 되지요. 문제는 과연 이들이 알렉신드르 콜차크 제독으로부터 빼앗은 황금을 전부 볼쉐비키에게 넘기었느냐에 대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황금 중 상당수를 빼돌린 것이 아닌가 하는 짙은 혐의를 받습니다. 즉, 최소한 기차 1량 정도의 황금이 볼쉐비키 에 반환되지 않고 이들의 수중에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요. 이런 루머(아마 어느 정도 사실일 듯 함.)는 후에 그들 체코 군단이 자기들만의 은행을 세우게되는데 이 때 은행 건물이 너무 화려하고 온통 금으로 화려하게 데코레이션을 하였기 때문에 더욱 증폭되기도 합니다..............말이 옆으로 새었는데, 여하턴 이 알렉산드르 콜챠크 제독 같은 경우 백군 지휘관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러시아에서 새롭게 재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며 그런 노력의 하나로 러시아 극동 지방 오지의 몇몇 섬 이던가가 그의 이름을 따서 새롭게 명명되기도 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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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수송행렬은 1918년 5월경, 첼리야빈스크에서 큰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의 진상은 아직까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은데.. 그중 가장 널리 유포되는 설에 의한다면 그 원인의 일부를 아마 볼셰비키 정부의 부주의에 돌릴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을 실은 군용열차는 첼리야빈스크 기차역에서 몇일간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동안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의거하여 중앙동맹국으로 돌아가는 독일인, 오스트리아 헝가리인 (이중에는 소수의 체코인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포로들과 충돌이 생긴 거지요... 특히 체코군단 병사들은 보로실로프 공세기간동안 대량의 헝가리군 포로를 잡았으며, 이에 원한을 가지고 있던 헝가리군 포로들과의 충돌에서 상당한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첼리야빈스크의 볼셰비키 당국은 이를 진정시키고자 사태의 주동자들을 붙잡아 연행했는데 이것이 실수였습니다.. 중앙제국 포로들과는 달리 체코군단 병사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체포되는 전우들을 구하기 위해 무력을 쓴다는 것이 통제를 벗어나 그만 첼리야 빈스크전체를 휩쓸어 버렸습니다. 프랑스군에서 파견된 장교들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가 너무나 적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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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가까운 길 놔두고 멀리 멀리 기차타고 배타고 산넘고 바다건너 고향까지 돌아서 가라는 말에 열이 뻗쳐있던 이들 체코군단은

무장을 해제하려던 지역 볼셰비키 군대를 아주 아주 간단하게 제압해버린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한다.

이대로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다보면 중간에 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그냥 내친김에 근처 옴스크(Omsk)에 터를 잡고 있던 반혁명정부(白軍)의 우두머리 콜차크제독과 손을 잡는다.

어차피 돌아갈거 그냥 백군과 손잡고 싸워 볼셰비키정부를 무너뜨린 후 다시 서쪽으로 해서 빠른길로 집에 가는게 낫겠다고...


 사실 여기에는 당시 먼저 항복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부터 갓 독립했던 조국 체코슬로바키아의 요청도 한몫했는데,

독립한 체코정부는 독일과의 전쟁을 위해 시베리아를 거쳐 이동중인 자국 병력들에게 러시아의 반혁명세력(白軍)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단다.

 

러시아 백군으로부터 노획한 짜르의 보물(금괴)을 볼셰비키에 넘기는 과정에서 이들은 일부를 여행자금(?)으로 몰래 빼돌렸다고 한다.

앞서 이들이 노획한 짜르의 보물이 객차 8대 분량이라고 했는데 그 중 일부를 빼돌렸다는... 대략 미화 1억달러(한화 1천억원) 정도로 추정한다는데...

 이들은 그 자금으로 체코에 돌아와서 은행을 세웠는데, 일명 체코군단은행(Legion Bank)이라 불리운단다. 바로 아래 보이는 사진이 그 은행이라는데...

사진의 진위는 나도 모르겠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유럽을 해방시킨 소련군대가 체코에 와서 맨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은행에 들이닥쳐 빼앗긴 자신들 선조의 금을 찾으려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