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지지자들이 민주당 내 다른 계파를 가리켜 수박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5.18 사망자라고 홍보되던 사진을 보고 전라도 사람을 희화화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이재명이 본래 전라도 사람도 아니고 민주당의 주류도 아니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의 5.18에 대한 생각
"광주에서 온 사람들 잘 들어"
“광주서 몽둥이로 대가리 깨진 거 봤지”… 이재명, ‘회칼 테러’ 패러디
전북 군산 유세 발언 <조선일보> 2024/3/21
이 대표는 "광주에서 온 사람들 잘 들어. 너네 옛날에 대검으로(대검으로 찌르는 시늉) M-16으로 총쏘고 죽이는거 봤지? (손가락으로 군중을 가리키며) 너 몽둥이로 뒤통수 때려서 대가리 깨진거 봤지? 조심해 (웃으며) 농담이야. 농담이야.” 이 대표는 이어 “여러분 이게 농담입니까. 생선회칼로 기자 허벅지를 찔러대는 것이 농담입니까. 겁박한 것 아닙니까” (후략) 라고 말하며 현 정부 비판을 이어갔다.
이재명의 5.18에 대한 생각은 수박에서 알 수 있어...
이재명 지지자들이 민주당 내 다른 계파를 가리켜 수박이라고 하는 것은, 5.18 시신 사진이라고 광고하는 사진들을 보고, 수박이라고 조롱한 데서 비롯되었다. 얼굴이 부서지거나 톱으로 썰리거나 끔찍한 사진들이 많은데, 이것을 보고 이재명 지지자들이 으깨진 수박같다고 해서 '수박' 이라고 처음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물론 언론에서는 이것을 순화해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바꾸어서 말하고 있다.
21일 이재명이 한 발언에는 이러한 뜻이 조금 들어있어 보인다.
'너 몽둥이로 맞아서 광주 사람 대가리 깨진 거 봤지? ➔ 그게 수박이라는 것.'
이재명은 본래 '혜경궁김씨'라는 익명 아이디로 트위터에 글을 올릴 때, 5.18에 대해서도 폭동이라면서 조롱했었다. 즉 민주당 내에서는 이단아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이 이단아라는 점은 김부선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김부선이 노무현 49재를 간다고 하자 이재명이 의아해 하면서 '비 오는데 거길 왜 가냐?'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재명은 민주당에 원래 있었던 사람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간첩에 가까운 문재인보다는 그렇게 좋은 인물은 아니라고 보이며, 혹시 그래서 조국을 띄우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
조국은 자연적으로 뜰 수가 없는 사람
윤석열 검찰총장이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조국을 거침없이 압수수색한 결과가 컸다. 이 점을 상기한다면, 조국의 당이 지금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조국의 그 인기라는 것은 누군가의 인위적인 조작이 아닌가 한다. 당 운영자금도 아마도 북한 쪽에서 지원받고 있지 않은가 의심이 된다.
특별히 전라도의 경우는 이재명한테 실망해 제3당을 지지할 순 있다. 그러나 그래야 한다면 아마도 이낙연일 것이고 조국은 아닐 것이다.
선관위 사무총장 김용빈은 노태악의 사람인 듯
선관위의 김용빈이 계속 선관위 투표관리관 도장 날인을 거부하고, 인쇄로 갈음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김용빈은 노태악의 사법연수원 동기라고 한다.
여론조사 기관이 여론을 조작한다는 반증
이것은 의외로 축구선수 폭력 사태로 알 수 있는데 손흥민에게 주먹을 휘둘러 물의를 일으킨 이강인에 대해서,
* 리얼미터 조사 결과
이강인 발탁 찬성 (46%)
이강인 발탁 반대 (40%)
이것은 리얼미터가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간접적 증거가 될 수 있다. (실제 인터넷 여론은 이강인에 대한 비난이 90% 이상이라 할 수 있음)
그 전에는 선관위로부터 편향된 전화번호를 받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었지만, 여론조사 기관이 나름대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보통 조작이 없는 곳에서는 이강인에 대한 비판이 90%가 넘게 발견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만원 박사님의 무죄 석방을 요구하세요.
2013년 보도를 중지시킨 당시의 죄를 조금이라도 경감받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5.18 언급 도태우 후보 재심
의대 증원처럼, 5.18과 부정선거도 다루어야...
공병호 박사는 의사들이 우파인데, 선거를 앞에 놓고 의사수를 늘리면 어떡하느냐 하였다. '진격의 변호사'에 출연하는 한 변호사도 선거가 앞인데 왜 그러냐고 하였지만, 대통령의 정책은 지지하며 옳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의사들에겐 그들의 소득이 줄어든다는 것 외에는 뚜렷한 명분은 없다.
어쨌든 의사들이 업무를 거부하고 있음에도 대통령은 강경하다. 헌데 어째서 5.18이나 부정선거에는 아직 침묵하는지 알 수 없다.
“원석은 광주 출신답게 정치적으로 조숙했다. 원석이가 직접 경험했던 5·18 광주에 대해 이야기해줘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원석이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는데, ‘어떤 대학생 한 명이 피를 흘리며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군인들에게 막 쫓기니까 살려 달라고 도망쳐 온 거였다. 그래서 숨겨줬다’고 말하더라.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원석은 또래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우리 둘 다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과 신민당을 지지했는데, 원석은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를 엄청 존경했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당시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민정당 청와대(5공 전두환 정부) 쪽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교수를 엄청나게 질타했었다. 당시 시대 분위기가 그랬다. 이때 원석이가 ‘선생님의 의견을 우리가 흥분하지 않고 들어본 뒤 따질 것을 따지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주장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이 총장은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먼저 주변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보는 그런 스타일이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한동훈의 경솔한 발언 '제갈량 결국 졌다'
한동훈은 자신이 칼과 창만 쓰는 관우/장비로 비유가 된 것을 안 것 같다. 12월에 삼국지 정치를 하면 안된다 하기도 했고, 제갈량을 예로 들며 '제갈량은 결국 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삼국지 팬이 많고, 제갈량 팬이 많다. 여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제갈량은 졌다고 말해버렸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제갈량도 아닌 그의 후손들이 나라를 뺏긴 것이다.
(아주 크게 봐서 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했다. 만약에 한동훈이 '이순신 장군 잘싸웠는데 결국 죽었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는가?)
제갈량 본인은 능력이 출중하며 충신이었기에 수천년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자신이 관우/장비로 비유된다고 제갈량을 비판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민 정책에 대한 아주 경솔한 발언
한동훈은 12월 "이민 정책은 할 거냐 말 거냐 고민할 단계를 지났고, 안 하면 국가가 소멸된다"는 아주 경솔한 말을 했다. 이로 볼 때 한동훈은 국적(Nationality)의 개념이 전혀 없다. 국적이란 나의 정체성이다.
또한 '할 거냐 말 거냐 고민할 단계 지났다'는 말에서부터 그의 가벼움과 오만함을 볼 수 있다. 다른 정책은 몰라도 이민 정책은 국민적 승인이 필요하다. 내 집의 방 한 칸에 전혀 모르는 남을 들인다 하면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할 게 아닌가? 한동훈은 그 단계를 무시했다.
한동훈의 생각은 한반도에 발을 디디면 다 한국인이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당연한 사실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국토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것인데, 웬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주인 행세하면 누가 순순히 인정하겠는가?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준석의 석차
배현진 폭행 사건
대통령 경호 상태 점검 사건들
고려의 장군 박서가 성루에서 지휘하는데 몽고군의 투석기가 돌을 날려 옆에 있던 경비병이 몸이 가루가 되었다.
주변 장수들이 박서에게 잠시 몸을 피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자 박서가 대답했다.
"내가 움직이면, 민심이 움직일 것이다."
그러면서 피하지 않고 계속 지휘하였다.
귀주성은 결국 함락되지 않았고, 몽고군은 돌아갔다.
성 주위를 둘러본 몽고군의 70대 노장이 말하였다.
"평생을 전쟁터를 다녔지만 이렇게 공격받고도 항복하지 않는 성은 처음 보았다. 성 안의 지휘관들은 모두 장상이 될 것이다."
그 노장의 예언대로 박서는 후일 정2품으로 재상에 준하는 지위에까지 올랐다.
한동훈의 위험한 5.18에 대한 생각
한동훈 위원장은 5.18 헌법 수록 망언을 취소하고, 5.18이 민주화운동이 아닌 폭동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파 정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을 자격이 없다.
1월 4일 한 위원장은 우려스러운 발언을 한 바 있다.
“1992년, 1993년 정도에 이 곳(5.18 묘지)에 처음 와서 윤상원 열사 묘역에 왔었다”며 “그 떄의 마음이나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 두 차례 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던 그러한 마음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출처 :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D3YBNFK8B
또한 한동훈은 1월 4일 다시 윤상원 묘를 참배하면서, "5.18 정신 헌법 수록에 찬성한다. 나중에 반대하면 이 장면 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동훈 비서실장과 장인은 친중파
한동훈의 비서실장 김형동의 처는 중공인이고, 장인은 연변부시장 출신의 공산당 간부이다.
또한 한동훈 본인의 장인인 진형구 전 검사는 前 '차이나 라이프' 발행인, 前 민주당 신익희 기념사업회장이라고 한다.
김경률
참여연대 출신이고, 전남 해남 태생이라고 한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가방(파우치)를 받은 사건을 비대위원이 되어서도 계속 언급하고 있다. 한동훈 또한, '국민 눈높이'라는 말을 쓰며 김경률의 발언에 약간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적을 바꾸기는 했으나 우파라는 것을 증명할 어떤 방법도 없다. 그가 단지 조국 흑서라는 책을 공동집필했다는 것 뿐이다.
한동훈은 빨갱이 숙주
한동훈이 데리고 온 비대위원 전원이 빨갱이 또는 전라도(우파 1명)로 구성돼 있고, 이들은 국힘에서 비대위원이라는 직함으로 떵떵거리게 되었다. 게다가 이미 김경율은 마포 을에 공천이 유력한 걸로 보인다.
법무 장관 자리가 비어있던 이유
대통령은 한동훈에게 비대위원장을 해보고 다시 내각에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달 째 법무장관 자리는 비어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통령은 새 법무장관을 임명함으로써 한동훈을 더이상 신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대위원장 사퇴를 거부한 한동훈에게 다시 돌아올 자리가 없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윤 대통령은 강성희 사건에 대해 대공용의점을 수사하여야 한다.
강성희라는 통진당 잔당으로부터 윤 대통령은 손을 꽉 잡히는 폭행을 당했다. 경호원이 제지하기는 했으나, 대통령은 이때까지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해 대공용의점 수사를 하지 않았음을 인지하셔야 한다.
약 2주전 벌어진 대학생 진보 연합(대진연)의 대통령실 무단 침입 사건과 이 사건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대진연은 대통령실의 경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뛰어들어간 것이고, 강성희 역시 대통령 경호원의 대응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서 대통령에게 물리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해 대공용의점 수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 2-3달 전에는 대통령 경호차량(스타렉스로 기억함)을 택시가 과속하여 들이받은 석연찮은 사고도 있었다.
대통령이 취임 직후 101 경비단에서 실탄이 분실되었고, 2022년에는 대통령실 근처에서 누군가 실탄을 발사하고 도망간 적도 있다. (2022.10. 대통령실 인근 다수의 총성, 특이사항 발견 못해... YTN)
대통령이 해당 발음을 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
MBC 주장은 "바이든이 X팔려서(8음절)" 인데, 원래 대통령이 했다는 말은 "날리면 X팔려서(7음절)"이다. 발음은 불분명해도 소리로 음절 수를 알 수 있다. 따라서 MBC가 날조를 한 것만은 확실하다.
7음절: 날 리 면 X 팔 려 서
8음절: 바 이 든 이 X 팔 려 서
이준석의 삶은 특혜의 연속
이준석은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싱가폴 등지에서 생활하여 국내 학업을 할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재 중의 수재들이 입학한다는 서울과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이후 2년 만에 고등학교를 월반하여 졸업하고, 카이스트를 2주 만에 자퇴한 후 하버드 대학에 지원했다.
폴리티코 연구소 김영윤 소장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에서 이준석은 경제학 필수 과목 2개를 수강하지 않았고, 하버드 대학은 복수 전공을 허락하지 않음에도 컴퓨터 과학/경제학 복수 전공으로 졸업했다고 주장하였다. 이준석의 졸업장은 일반 하버드 졸업생의 것과는 다르다.
귀국 후 이준석은 병역을 산업기능요원으로 이행하며, 대학 재학생만 지원할 수 있는 SW마에스트로 과정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또한, 1년 후인 2011년에는 벤쳐기업 창업 자금도 지원 받았다. 그러나 벤쳐기업을 운영(?)한 지 3개월 만에 회사 문을 닫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에게 발탁되어 정치에 발을 딛게 되었다.
이 수순을 보면 이준석의 삶은 10대 시절부터 특혜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노무현 정부의 해외유학 장학생 1호로 선정되어(총 20명) 장학금까지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이를 보면 이준석도 좌익으로부터 장학금과 각종 지원을 받아온 게 아닌지 의심된다.
하버드 장학금의 상세 의심 사항
노무현(김대중)으로부터 장학금 받아
이준석은 2021년 6월 인터뷰에서도 노무현으로부터 대통령과학장학금을 받았다는 내용을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장학금은 사실 김대중 때 기획된 것이다.
*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3일 “‘대통령 과학장학생 제도’를 도입해서 과학 영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 육성하겠다”고 말했다.(경향신문 2002.01.03)
2003년 장학금 신설은 우연의 일치인가
이준석이 2003년에 하버드에 입학하자,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2월 20일, "과학기술 인재 양성 및 우수 연구자 확보를 위한 대통령 과학장학금 신설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대통령 과학장학금이 신설되었다.
(국내 인재 100명, 해외 유학 20명을 지원하기로 하였는데, 이 20명에 이준석이 포함된 것)
기타 각종 특혜를 받음
"겸직 금지"된 SW 마에스트로 과정 부정 합격
이준석은 산업기능요원 복무(병역 이행) 중에 2010년 6월 3일에 공고된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과정" 연수생으로 선발됐는데, 이때는 병역 의무 중이었으므로 선발 될 수가 없었다. 100명 합격자 중 99명은 대학 재학생이었으나, 1명은 이준석이었다.
청년 벤쳐기업 창업지원금도 수취
2011년 8월 5일에 중소기업청 청년 벤처기업 창업지원금을 받아 자격증 시험 문제를 제공하는 앱 '테스트바다' 등을 개발하는 벤처기업인 클라세스튜디오를 창업.
2011년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발탁
창업 3개월만에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에게 발탁된 후 회사 정리했다는 점도 이상한 점이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취임)